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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Narrative Space(1) - Introduction

조회수 3737 추천수 0 2010.02.22 14:10:50

2007년 중순, ‘직장인-에겐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우선 몰래 낙서만 하던 회의시간에 적극적으로 의사표현(물론 대체로 불만이었지만)을 하기 시작했고, 당최 프로젝트 정보공유를 독점해서 팀원들을 힘들게 했던 상사에게 정면으로 대드는 배짱이 어디선가 스멀스멀 생겼다. 어디 그 뿐인가, 회사 일에도 더 애정을 가지게 되었고, 내 주변의 인과관계들을 조리 있게 정리하는-평소 거의 안 하던-행동을 하는가 하면, 술자리를 끝까지 지키고, 주변 사람들한테 조언을 아끼지 않는 너그러운 마음 또한 가지게 되었다.

 

스크루지 갱생기같은 변화는 사실, 회사를 때려 치겠다는 결심을 한 다음부터 내게 일어난 일이다. 차라리 사회생활 초기에 이런 맘을 먹을 걸인사평가 잘 받고, 연봉이라도 몇 푼 더 받았을 텐데……했지만 난 처음 취직 했을 때조차 아직 학생시절의 내 맘대로 생활에 대한 미련을 채 버리지 못한 축축 늘어지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이미 저지른 일. 어쨌든, 나는 그렇게 앞으로 쭈욱 깨끗할 통장의 입금내역란과 내 일상의 능동성을 맞교환 했다. 거기에 이 나라를 떠나버리고 말겠다는 다소 과격한 결정까지 더 해지자 이번엔 내 주변의 별 사소한 것들에도 난 촉수를 들이댄 채, 문제의식이 발동하는 족족 주저없이 개입하고 아낌없는 분노를 쏟아냈다. 여기에 물론 실천이 빠지면 안되지. 뒷다마공격(일명 백 어택)같은 소심한 응징에서부터 데투르누망적Détournement 실천도 몸소 마다치 않았다. 인도 한가운데나 자전거 전용도로에 보란 듯이 올라타 보행권을 침해하는 몰 양심 자동차에는 외산/국산 구분 없이 백미러꺽기나 아낌없는 라이터 부싯돌 자국으로 정의의 주홍글씨를~!, 내리기도 전에 타려고 박박 달려드는 지하철 완력남한테는 내 한 덩치를 이용한 블로킹, 시간차 공격 등등. 나는 나름 집요하게 선생들(보르Guy Debord 세르토Michel de Certeau)의 교란작업에 동참했다.

 

이렇게 나름대로 분주한 일상적 실천과 응징의 나날들 대략 1…… 그 동안 나의 도시는 내 이런 고충?이나 바램과는 아무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서울시는 하이힐 신고 넘어지는 여성들이 눈에 밟혔는지 빈틈없는 도시를 만들겠다며 시내의 보도를 죄다 들어냈고, 한강은 또 한차례의 대공사로 어질러져서 인생의 낙이던 한강고수부지 라이딩은 좁은 자전거도로를 둘러싼 덤프트럭과의 목숨 건 진검 승부처가 되었다. 눈에 익던 종로 구석구석은 또다시 사수하는 자들과 엎으려는 자들의 위태로운 천막싸움터로 변해갔고, 온 나라가 강을 사이에 두고 선동의 전쟁터가 된 것도 물론 다들 아는 사실이다.

 

사람이란 존재자체가 타인에겐 지옥인 출퇴근길 지하철 2호선에서 그리고 길에서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히는 한번의 찰나에, 또는 파헤쳐지거나 더욱 은폐되어 감춰지는 은밀한 풍경들의 기이한 정서에 나의 도시는 이미 내가 개입하여 더불어 지내는데 필요한 최소 인내심의 한계치를 훌쩍 넘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어서 빨리, 어서 빨리를 되뇌며 기약 없는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나 되돌리지 못할 길에 오른 인생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을 부풀리면서 이 모든 참여와 개입의 고리를 풀어버리고자 외국행에 집착했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그렇게 해서 오게 된 곳이 스위스 취리히다. 비록 주저리 한 서론이 되 버렸지만.

앞으로의 연재에서 이 곳, 스위스를 계속 글의 참조대상으로 우려내야 하는데 위에서 고백한 것처럼 필자와 같은 타자(외국인)의 입장에서 직접 참여할 수 없는 닫힌 세계에 대해 가진 환상을 조금이나마 넘어설 수 있는 통찰이 가능할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frame1.jpg

(지하철이용독려? 홍보광고. 서울, 2009)

참조대상으로써 도시의 특정 부분을 언급하는 일은 굉장히 까다로우며 사실 그 관계가 실체 없는 맥거핀MacGuffin에 가

까울 때 또한 많다는 생각이다.  알려진 바, 뉴욕이나 파리의 지하철은 세계적으로 안 깨끗하기로 유명한데, 위 광고의

물음에선 오직 상류도시일 것이라는 막연한 허위의식 안에서 허상만이 비교될 뿐이다.

 

 

도시의 구조자체보다는 그 사회의 담론공간상에 존재하는 도시와 도시공간의 문화적 의미를 탐험하는 일이 여기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위에서 밝힌 개입과 참여의 한계-이런 약간의 비관으로부터, 어쨌든 학생신분이라는 최소한의 발 담금만으로 일단 이 곳의 읽기작업을 진행한다는 점을 먼저 말씀 드린다.

 

어쨌든, 다음 글에서는 무엇보다 먼저 단지 스위스-취리히라는 도시의 특수성에만 주목하기 보다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보편적인 요소들, 스위스 사람들의 정치사회적 경험의 다름이 만들어내는 공공성의 조건들에 좀더 관심을 돌리고자 하는데, 이것 역시 타자로써 가장 먼저 주목하게 되는 차이에 대한 집착을 좀 비껴가고 싶은 생각 때문이다.

 

 

 

 

 

profile 글쓴이 : 문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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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석 : 고정 칼럼리스트. http://blog.naver.com/tool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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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ANSCRAP

2010.08.06 03:51:49
*.94.2.20

도시는 항상 참여와 개입으로 이야기를 어떻게해서든 만들어지게 되지요. 외국, 타지에 있다보면 항상 자기자신이 타인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관찰자'가 되기 쉽지만, 우리도 그 곳에서 그들의 '이야기'에 일조하는 참여자인걸요. 스위스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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